[ 하노이 K부동산 대표 칼럼 ]
필자는 1990 년대 초 직장 관계로 일본 도쿄 인근에서 수 년 간 거주했다. 필자가 거주한 ‘가끼오’란 동네에서 ‘다마 신도시’까지는 6~7km 정도의 거리로 매우 가까운 도시다. 주말 또는 휴일이면 다마 신도시로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마 신도시가 매우 쾌적한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한국 5대 신도시의 현재 진행 상황과 미래에 대한 대책 등을 필자의 의견으로 정리해 보았다.
1980 년대 말 서울, 살인적인 집값 폭등과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수도권 외곽에 5개의 거대 주도형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산본, 평촌, 중동)를 건설하는 대동맥을 뚫었다. 이 원대한 계획의 설계도 밑바탕에는 일본이 1970 년대 도쿄의 인구 폭발을 막기 위해 조성한 ‘다마 신도시 (다마 뉴타운)’라는 거울이 있었다.
대규모 주택 공급을 통해 중산층의 주거 안정을 꾀하고, 초기에는 직장으로 가기 위해 잠만 자는 ‘베드타운’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1기 신도시는 먼저 늙어간 큰 형님 격인 다마 신도시의 발자취를 보며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노후화와 고령화, 피할 수 없는 ‘데칼코마니’
도시의 노화는 인간의 노화만큼 이나 정직하다. 신도시 초기에 입주했던 30~40 대의 젊은 부부들은 도시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다마 신도시는 이미 주민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 고령화 지역이 되었고,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들은 문을 닫았다. 한국의 1 기 신도시 역시 준공 30 년을 넘어서며 중대형 평형을 중심으로 고령화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통폐합이라는 똑같은 진통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다마 신도시의 현재는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처럼 ‘유령도시’로의 전락일까? 현장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다마 신도시의 재생은 철저한’양극화’와 ‘거점 중심의 각자도생’으로 요약된다.
역세권에 위치하고 대규모 개발이 가능했던 구역(스와 2 정목의 ‘브릴리아 다마뉴타운’ 등)은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성공적으로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되었고,젊은 층이 다시 유입되며 활력을 찾았다. 반면, 역에서 멀고 지형이 가파른외곽의 저층 빌라나 단독주택 단지들은 사업성 부족으로 방치된 채 빈집이늘어나는 그늘을 안고 있다.
도시 전체가 아니라, ‘돈이 되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명암이 극명히 갈린 것이다.
1 기 신도시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 ‘공사비 폭탄’
다마 신도시의 이러한 성적표는 최근 한국 정부가 ‘노후 계획 도시 정비 특별법’을 발의하며 야심 차게 추진 중인 1 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에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특히 현재 한국 신도시들이 마주한 현실은 일본의 과거보다 훨씬 가혹하다.
일본 다마 신도시의 초기 주거 형태는 5 층 내외의 중저층 중심이었기에 재건축 시 용적률을 높여 일반 분양 물량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반면 한국의 1기 신도시는 이미 150~200%에 달하는 중고층·고용적률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간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솟은 ‘건축비 폭등’이라는 메가톤 급 악재가 맞물렸다. 평당 공사비가 1,000 만원을 호가하는 시대에, 기존 용적률이 높은 단지가 재건축을 하려면 주민들이 가구 당 수억 원에 달하는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
여기서 냉정한 시장의 법칙이 작동한다. 평당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도 수요가 몰리는 ‘분당’ 만큼은 일반 분양 수입으로 공사비를 상쇄하며 재건축의 닻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분양가 상한선이 매매가가 받쳐주지 못하는 일산, 산본, 중동 등의 나머지 신도시들은 주민들이 ‘분담금 폭탄’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이 멈춰 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가 법을 통과시켜 주며 대문을 열어주었으나, 치솟는 건축비라는 잔인한 시장 논리가 바리케이드를 친 형국이다.
각자 도생의 시대, 1기 신도시 주민들의 ‘현명한 생존 전략’
이처럼 냉혹한 현실 앞에서 5 대 신도시 주민들은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무조건 “새 집을 지어주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낙관론은 금물이다. 이제 주민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 가 되어 내 자산과 동네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생존 3계명’을 준비해야 한다.
- 첫째, 환상을 버리고 ‘냉정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내가 실제로 내야할 분담금의 규모를 보수적으로 산출해보는 것이다. 만약 고정 수입이없는 고령층 주민이 많다면, 수억 원의 분담금을 감당하기보다 자산유동화(연금 등)나 리모델링 등 다른 대안을 조합 차원에서 빠르게 논의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 둘째, ‘재건축 만능 주의’에서 벗어나 출구 전략을 다양화해야 한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주민들은 과감하게 출구 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무리하게 재건축을 고집하며 10~20 년을 표류 하느니, 규제가 덜하고 공사 기간이 짧은 ‘고밀도 리모델링’이나 ‘소규모 블록 정비 사업’을 공략 하는 것이 실속 있을 수 있다.
- 셋째, 단지 이기주의를 넘어 ‘지자체와의 밀당(협상)’에 나서야 한다: 아파트만 덩그러니 지어 놓으면 도시 전체의 가치가 떨어진다. 주민들은 우리 동네에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는 부지를 마련해 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하고, 역세권 복합개발을 유도해야 한다
뼈대만 남기는 리모델링, 과연 안전한가?
여기서 많은 주민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아파트 뼈대(골조)만 남기고 다 뜯어 고친다는데, 과연 무너지지 않고 안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조 진단을 통과하고 현대적 보강 공법을 거친 리모델링은기술적·건축학적으로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재건축을 원하는 이유는 대개 뼈대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녹물이 나오는배관, 부족한 주차장, 낡은 단열재 등 ‘살기 불편해서’다. 아파트의 콘크리트골조는 관리만 잘하면 50 년에서 100 년까지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게다가 리모델링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공인하는 철저한 ‘구조안전진단’을필수적으로 2 회 이상 거쳐야 하므로, 안전성이 검증된 단지만이 이 길을 갈 수있다.
오히려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탄소섬유 보강재를 부착하고 철골 기둥을 덧대며 최신 내진 설계까지 추가된다. 껍데기만 보면 옛날 건물이지만, 뼈대의 힘은 처음 지어졌을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업그레이드 되는 셈이다.
다만 주민들이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안전’이 아니라 ‘공사비의 가변성’과’ 구조적 한계’에 있다.
기존 아파트 밑바닥을 파고 들어가 지하 주차장을 만들고 신구 구조물을연결하는 작업은 건축학적으로 최고 난이도에 속한다. 막상 땅을 팠을 때 지반이예상보다 약하면 이를 보강하느라 공사비가 중간에 크게 뛸 수 있다. 또한,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내력벽을 함부로 허물 수 없다 보니 신축 아파트처럼 탁트인 최신 평면(4Bay)을 만들지 못하고 앞뒤로 긴 ‘동굴형 구조’가 나오기쉽다는 한계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단순한 아파트 교체를 넘어, ‘도시 생존 전략’으로
이대로 둔다면 한국의 1기 신도시는 분당만 화려하게 부활하고, 나머지 지역은 노후화의 늪에 빠지는 ‘도시 양극화’를 피할 수 없다.
일본의 가끼오 역 옆 신유리가오카 역에서 뻗어 나간 오다큐선 철로가 다마 신도시의 핏줄이 되어 주었듯, 한국 역시 GTX 와 광역 교통망 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다. 다만 이 교통망이 서울로 인구를 빼앗기는 빨대가 될지, 신도시로 기업을 유인하고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유인책이 될지는 지금부터 짜 내려갈 정비 계획의 디테일과 주민들의 현명한 대응에 달려 있다.
먼저 늙어간 다마 신도시의 오늘은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도시의 재생은 건설사들의 수주 잔치나 막연한 부동산 대박 환상이 아니라, 그곳에 살다 늙어 갈 사람들을 위한 인프라의 재구성이라는 점을 말이다. 1 기 신도시 주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라 공사비의 현실을 직시하는 냉정함, 그리고 무조건적인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까지 열어두고 내 동네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찾아 실행하는 결단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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